설교와 회중

저는 한국에 있는 청파교회의 설교를 인터넷으로 종종 듣습니다. 한동안 설교로만 접하던 그 교회를 처음 방문했던 것이 2012년이었는데요, 그 때 빗나간 제 예상 한 가지는, 그 교회 교인들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김기석 목사님의 설교는 철학과 고전에 많이 잇닿아 있는데, 그 부분이 설교의 예화에 가볍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설교 전체의 흐름에 구심점 역할을 합니다. 게다가 설교자가 이러한 고전을 인용하고 성서를 해석하는 맥락이, 우리 삶의 구제척인 모습보다는 역사와 사회의 전체적인 거시 위계에 머무릅니다. (바로 이 부분이 제가 이 교회 회중의 성격을 추측해내지 못한 이유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이런 설교에 근거해서 제가 유추해 보았던 이 교회 회중의 모습은 이러했습니다. 본인이 먹고 사는 데에는 지장이 없을 만큼의 기본적인 경제력이 있으나 그 이상의 물질적 부에는 큰 욕심이 없을 만큼의 양식을 갖추고 있으며, 높은 학력과 지적 호기심, 40-50대 나이, 그리고 더 좋은 세상을 향한 갈증이 머리와 가슴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으로 상상되었습니다. 교인들 중에는 민주당 지지자와 진보정치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2:1 정도의 비율일 것 같았습니다. 제 이런 예상들 중에서 다른 부분은 제가 확인할 수 없었으나, 적어도 외모(와 그에 대한 저의 선입견/편견)에서 느껴지는 첫번째 부분 – 경제력과 학력 – 은 의외였습니다. 많은 수의 교인들이 시장 상인들과 노인들이었고, 설교 중의 인문학적 내용보다는 잠깐씩 언급되는 우리 삶의 이야기에 더 큰 공감의 탄성이 들렸는데, 그 소리에 묻어나는 갈증은 강한 울분보다는 약한 탄식이었습니다.

저는 그 교회에 방문한 이후로 이런 궁금함을 가졌습니다. 내가 그 설교에서 배우고 느끼는 것들과 그 교회 교인들이 마음에 담는 것들은 얼마나 닮고 다른 것일까. 니코스 카잔차키스나 에드워드 싸이드를 실제로 읽지 않는 교인들은 설교에 언급되는 그들의 글에서 어떤 것들을 느끼고 있을까. 설교자가 일차적으로는 나 같은 사람보다는 교인들의 삶을 마음에 담고 메세지를 준비할진대, 그는 어떤 마음으로 설교의 얼개를 짜는 것일까. 어쩌면 내가 설교자가 전달하려는 것과 다른 앵글에서만 그 설교들을 들어온 것은 아닐까 (그래도 괜찮은 걸까). 그 목사님의 설교와 설교 외의 목회활동은 어떤 면에서 얼마나 일관된 모습일까.

아직도 이 질문들에 대한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중에, 저는 비슷한 경험을 지난 주에 했습니다. 제가 토론토의 한 교회를 방문했는데, 저는 그동안 그 교회 목사님의 설교를 음성 화일로만 몇 편 접했습니다. 제가 들어보았던 그 분의 설교들에서는 우리 삶의 부족하고 나약한 모습과 그와 연결되어 하나님에 대한 의존성이 자주 언급되었습니다. (물론 이 분의 설교는 제가 많이 들어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교회는 우선 건물이 매우 깨끗했고 로비는 매우 밝고 넓직했습니다. 주차장의 자동차들과 사람들의 옷차림에서 느껴지는 모습은 서울 강남의 대형교회 같았습니다. 30-40대의 젊은 교인들이 많았고, 교인들의 엷은 미소는, LA 한인타운의 한인교회에서 종종 마주하는 삶의 피로가 녹아있는 교인들의 얼굴과 대조적이었습니다. 아기를 안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자모실에서, 사람들은 주로 행복해 보였지만 어느 누구도 모르는 사람에게 인사하거나 말을 걸지 않았습니다. 교인들은 특별히 친절하지도 무례해 보이지도, 그리고 서로를 필요로 해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청파교회에서 느꼈던 저의 궁금함들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제가 어떤 궁금함에 대해서 전혀 단초가 없을 때에는 이렇게 글로 옮기는 것도 망설여지게 됩니다. 뭐라고 써야 할지 모르니 말이지요. 그래도 다시 한번 답을 찾아 보고, 또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의 조언도 구해 보려고 제 궁금함을 정리해 봅니다.

황망함

부모님 연세에 비해서 늦게 태어난 저는, 친척 모임이나 부모님 친구분들 모임에 가면 또래 친구가 없었습니다. 국민학교에 다닐 때에 외가댁 모임에 가면 제 이종사촌과 외사촌들은 모두 대학생 또는 그 이상이었기 때문에, 그 시간이 참 지루했고 그래서 그 모임에 가기도 싫었더랬지요. 외할아버지/외할머니댁은 여의도의 어느 아파트였는데, 숫기 없는 어린 아이였던 저는 어른들께 인사만 드리고 그 집을 나와서 아파트 베란다에서 서너시간씩 혼자 있다가 식사때가 되어서야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다들 저에게 “올해 몇살이냐, 많이 컸네”등의 겉도는 인사말만 걸어서 오히려 제 무료함과 어색함을 더하기만 하던 그 시간에, 그래도 따뜻하게 제게 장난도 치고 놀아주기도 하고 진심어린 말도 걸어주던 사촌으로 형이 한 명, 누나가 한 명 있었습니다. 둘 다 저보다 일곱여덟살이 많았기에 저를 데리고 놀아주는 데에 한계가 있었지만, 그래도 하루 종일 우두커니 있던 저에게는 그런 관심이 참 반갑고 고마워서 삼십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마음에 남습니다.

그 이종사촌 누나가 오늘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제 갓 오십인 젊은 나이이고 그 부모님도 살아 계셔서 그 안타까움과 충격이 더 크네요. 산다는 것의 의미나 하루와 순간의 소중함을 되새겨 보게도 되지만, 이내 걷잡을 수 없는 황망함에 다시 하얗게 지워집니다.

우리는 평가의 수단을 가지고 있는가

허리가 아파서 병원에 다녀왔습니다. 믿을 만한 소개로 찾아간 그 의사 선생님은, 의학을 잘 모르는 제가 알아들을 수 있게 그림도 그려 주시고 비유도 적절히 사용하여 친절하게 제 증상을 설명해 주셨고, 이럴 경우 가능한 치료법들을 열거해 주셨으며, 그 중에서 자신이 권하는 방법은 무엇이라고 추천도 해 주셨습니다. 아무튼 저에게는 만족스러운 병원 방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 병원과 의사 선생님에 대해서 만족하는 이 근거들은 적절한 것일까요?

물론 친절은 환자의 기분을 좋게 하고, 적절한 수단을 사용한 눈높이 맞춤 설명은 환자를 안심시킬 수 있겠지만, 사실 의사의 진단이 정확한지와 그가 제시하는 치료 방법이 적절한 것인지는 의학과 의료에 정통하지 못한 환자로서는 알 수 없는 부분이며,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이 부분이 의사의 친절함과 언변보다는 훨씬 더 중요한 부분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들이 여러 webpage들과 입소문들을 통해서 소위 “의료 서비스”를 평가하는 데에 사용하는 기준은 친절함과 깔끔한 설명, 그리고 결과적으로 내가 다 나았는가 등입니다. 이 중에서 마지막 부분은, 사실 그 의료진만이 원인인지 여부를 분명히 할 수 없을 만큼 confounding factors가 많음을 감안한다면, 우리는 어쩌면 의료 서비스를 평가할 제대로 된 기준을 가지고 있지 못하면서도, 내가 가진 기준에만 근거해서 결론에 이르고 있으며, 더 심각하게는, 그러한 결론 도출과정의 타당성이 부족하다는 사실 자체에 대한 경각심 마저 잃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의료 분야 뿐만이겠습니까.

대부분의 대학에서 학생들은 학기말에 자신이 수강한 수업과 교수에 대한 평가를 합니다. 평가 항목들 중에서는 학생들이 판단할 수 있을 만한 항목들도 많이 있지만, “전반적으로, 이 교수는 수업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진행했나요?” 같은 질문에 답을 할 때에, 학생들은 과연 그에 걸맞는 평가의 수단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이미 잘 알려져 있다시피, 강의 평가 점수는, 한 학기동안 교수가 학생들에게 얼마나 진심으로 대했으며 친절했는가와 얼마나 깔끔하게 설명을 잘 했는가에 주로 근거합니다. (물론 성적을 얼만큼 잘 주느냐도요.)

정치도 그렇습니다. 정치인들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인격적이고 진실한지 따위에 근거해서 총리,국회의원, 장관, 대통령을 평하는 유권자의 선택과 여론은 과연 적절한 평가 기준에 근거한 것일까요? 저에게는 이러한 기준들만으로 하는 평가들이 우스꽝스러워 보이기까지 합니다. 적어도 어떤 경우에는 말이지요.

적절하고 충분한 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소비자와 유권자들은 판매자와 권력자를 평가할 권리와 때로는 책임을 지닙니다. 의학을 모른다고 해서 자신이 받는 의료 서비스에 대한 평가할 자격이 없는 것이 아니며, 학생들의 강의 평가는 결국 단점보다 장점이 크게 작용하니까요. 다만, 적절한 평가 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경우,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며 자신의 어설픈 판단을 정당화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내리는 평가의 기준이 충분하거나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는 자각과 인식 정도는 필요할 것 같습니다. 요즘 한창 이슈들이 많은 한국과 미국의 정치 상황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자신감 넘치는 평론들이 피로감을 주는 이유는, 그 주장들의 강경함 때문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자각과 인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것이 시사하는 바

한국 국회의원 김무성이 공항에서 자신의 carry-on luggage를 수행원에게 전달하면서, 그 수행원 쪽으로 시선을 향하지 않은 채 밀어서 전달한 모습이 “no look pass”라는 조롱과 풍자로 이야기거리가 되었습니다. 그 일이 화제가 된 이후에 김무성과 인터뷰하는 기자가 그 일에 대해서 묻자, 수행원이 보이길래 밀어줬는데 뭐가 잘못이냐고 되묻는 모습이 알려지기도 했지요. 그의 이 인터뷰를 곱씹어 봅니다. 그러게요, 뭐가 잘못일까요?

제가 대학교때 잠깐 몸담았던 모임에서는 4학년이 1학년을 부를 때 무성음으로 “춧춧”이라는 소리를 냈습니다. 그러면 1학년은 벌떡 일어나서 “예”라고 대답하며 그 4학년에게 가야 한다고 교육을 받았지요. 운동부들과 가까운 모임이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여러 가지 규율이 많았지만, 이건 좀 심하다 싶어서 3학년 선배 한명에게 “그냥 야! 라고 부르시는 게 더 편하실 것 같은데, 꼭 그렇게 강아지 부르듯이 불러야 하나요?”라고 되물었지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듣지 못하고 말대꾸한다며 혼만 났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서 저는 그 모임을 나왔는데, 1학년을 부르는 호칭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그 호칭이 시사하는 여러 가지 문화에 적응하지 못했던 이유가 컸습니다.

제가 박사과정때 교수와 그의 오피스에서 미팅을 하던 중에, 다른 교수 한 명이 잠깐 미팅을 하자며 그를 찾아왔습니다. 제 방에 돌아가서 언제가 될지 그 미팅의 재개를 기다리던 중, 그 교수에게 메일이 한 통 왔습니다. 제목도 없고 내용도 없는 blank mail이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는지, 실수로 클릭했는지 교수에게 확인하려다가 말았는데, 30분쯤 후에 다시 메일이 왔습니다. You can come. 이라는 한 문장이었습니다. 다시 찾아간 교수 방에서 그는 저에게 아까 메일 보냈을 때 왜 오지 않았냐고 물었습니다. Blank mail이어서 무시했다고 하자, 자기는 그 정도면 제가 알아들을 것으로 생각했다며 답답해 했습니다.

뭐가 문제일까요? 김무성만큼이나, 그 때 그 3학년 선배도, 제 지도교수도 의아했을 것입니다. 그러게요. 어떻게 생각하면 굴러오는 가방을 받는 일, “춧춧”이라는 호칭에 대답하는 것, 그리고 blank mail을 알아서 추측해서 그 방으로 달려가는 일 자체는 모욕감을 느끼는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수행원이 무릎을 꿇어야 했던 것도 아니고, 선배가 후배에게 욕을 한 것도 아니고, 그 교수가 저를 학대한 것도 아니니까요. 그런데 한번 더 생각해 보면, 사실 그 수행원은 평소에 무릎을 꿇어야 할 수도 있고, 그 모임의 선배들은 후배에게 쌍욕을 종종 했으며, 그 교수는 저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모욕적인 말을 하는 일이 잦았습니다.

뭐가 문제일까요? 그 일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그 장면이 시사하는 다른 장면들의 바탕색이 그리 밝게 상상되지 않는 것이 문제일 것입니다. 그 장면들이 수행원과 후배와 학생에 대한 모독이 아니라는 항변은 일견 동의가 됩니다만, 그들에 대한 예의과 존중에서 그런 행동들이 나올 수 있는 것일까를 상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더 높은 사람임을 표현할 수 있는 장치들을 마련하고 싶은 욕구는 우리 안에 깊게 내재하는 것 같습니다. 제 삶의 장면들 속에서 갑(甲)으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있다면 그나마 다행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제 삶의 모습들을 돌아봐도, 제가 위에서 열거한 것처럼 을(乙)로서의 기억들이 주로 떠오르는 것을 보면, 적어도 저는 제 삶을 돌아보는 것만으로는 반성과 자람으로 귀결시키기에는 역부족인 것 같습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이지 살얼음판을 걸어가는 것만큼이나 두려운 길입니다.

 

Alpha and Omega

오웬이의 데이케어 마지막 날입니다. 그 동안 오웬이를 맡아 주셨던 선생님들 한분 한분을 따로 만나서 인사를 나눴습니다. “아이가 처음에 많이 울고 영어도 불어도 한 마디 못할 때 맡아 주셔서 특별히 감사합니다”라는 인사에 오웬이의 데이케어 첫 선생님이셨던 분은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습니다. 삶의 궤적이 맞닿고 떨어지고 하는 무수한 반복 속에서도 그렇게 무뎌지지 않고 아쉬움을 표현해 주시는 그 분의 모습이 저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고마운 분들의 마음만큼 오웬이가 자라 주기를 바라는 것은 부모의 사랑에 자식이 오롯이 반응하기를 기대하는 것 만큼이나 허황된 것일 테고요, 그저 머금은 사랑의 자양분으로 촉촉하게 자신만의 잎싸귀를 틔워내기를 응원합니다.

사진은 오웬이의 데이케어 첫 날과 마지막 날 등교 모습입니다.

Daycare first and la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