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남입니다

한국에서 평소 리버럴 기득권층과 오피니언 리더들에 대한 비판을 많이 해오던 진보 글쟁이들이, 요즘 역으로 그들로부터 비난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그 비난을 직접 받을 만큼 영향력 있는 글쟁이는 아니지만, 제 생각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들을 제3자의 위치에서 접하고 나니 저도 우선은 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됩니다. 이런 비난을 받는 것의 유익은 우선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제 생각이 짧으니만큼, 돌아본다고 해서 꼭 나아지는 것은 아니지만요…

하지만 이 시점에서 그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그분들의 비난에 대한 제 답변과 변명도 있습니다.

(1) “우리가 남이가. 너네들이 어떻게 우리한테 이럴 수 있느냐.” 네. 우리는 남입니다. 저는 당신들을 남으로 생각하는데, 왜 자꾸 선거철만 되면 그리고 정국에 큰 이슈가 있을 때마다 저희들을 당신 생각에 동조해야만 하는 사람들로 생각하시나요. 저희가 동조하는 일인데 왜 더 열심히 동참하지 않느냐는 비판은 제가 듣기에도 타당합니다. 다만 저희가 이렇게 생각하는데 왜 저렇게 행동하지 않느냐는 비판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저희가 2번을 안찍어서 1번이 당선되었다고 선거때마다 저희를 비난하시는 것처럼 말이죠.

(2) “아니, 너네한테 우리 편이 되어 달라는 게 아니라 좀 상식적으로 생각하라는 거다. 너네 생각은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다.” 당신이 보기에 제 생각이 비현실적이라는 것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같은 논리로 제가 보기에는 당신의 생각이 지나치게 현실지향적입니다. 하지만 당신과 제가 모두 인정해야 할 것은, 당신이 보기에 당신이 옳고 제가 보기에 제가 옳다는 사실입니다. 서 있는 곳이 다르면 보이는 풍경이 다른 것이니까요. 상식이라는 말처럼 몰상식한 말이 또 있을까요. 물론 자기모순은 비판의 대상일 수 있습니다. 한 예로, 한국 공기업 민영화의 선구자들께서 지난 10년간 갑자기 민영화 반대투사가 되신 당신들을 저는 비판했습니다. 저에게도 이런 내적 일관성의 부재가 있을진대 지적해 주시면 겸허히 듣겠습니다.

(3) “그래도 쟤네보다는 일단 우리를 밀어주는 게 너네한테도 유익이 아니냐. 너네 때문에 결국 이득을 보는 것은 쟤네들인데 그게 진짜 너네가 원하는 거냐.” 여기에는 몇 가지 답변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우선은 당신들이 기득권을 지켜온 지난 20년간 당신들이 결국 당신들 뜻대로 하면 저희에게도 유익이겠거니 가정했던 것이 틀렸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각 정권에서의 노동운동 탄압지표들만 검색해 보셔도 저희 마음을 조금은 헤아리실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저도 많은 부분에서 쟤네들보다 당신들이 더 좋은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시 말씀드리지만, 우리는 남입니다.

(4) “그래도 우리가 일구어온 민주화 덕분에 너네가 지금 그런 생각과 일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걸 잊지 마라.” 네, 맞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 감사를 표현하는 방법이 당신들이 생각하는 상식과 다른 것 같아서 아쉽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합니다.

Cream and Sug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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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necticut주에 처음으로 와 봅니다. New England의 다른 주들과 전체적인 분위기가 크게 다르지는 않은데, Dunkin Donuts가 New England의 다른 주들보다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어디 가나 마주칩니다. 심지어 이 곳에 연고가 있는 미국 프로야구 마이너리그 double A의 Hartford Yard Goats (현재 메이저리그의 Colorado Rockies와 연계되어 있습니다)의 홈구장 이름도 Dunkin Donuts Park입니다.

미국 서부에 살다가 캐나다로 이사온 저에게 Dunkin Donuts가 그다지 익숙한 브랜드는 아닙니다. 그래도 이 Dunkin Donuts 커피는 제가 19년 반 전에 처음으로 미국에 와서 경험한 미국 커피입니다. 그 때 보스턴의 Dunkin 가게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나니 점원이 “cream and sugar?”라고 물었는데 그 말을 못알아들어서 가만히 있으니 제가 영어를 못하는 걸 알아채고 그냥 cream and sugar를 넣어서 커피를 줬더랬습니다.

19년 반이 지난 오늘 다시 Dunkin Donuts에서 커피를 주문했더니 그 때랑 똑같이 “cream and sugar?”라고 묻습니다. 그 순간 달콤한 커피를 마시고 싶은 욕망과 건강을 위한 절제 사이에서 제가 망설이면서 대답을 못하고 가만히 서 있었더니, 점원이 뒤돌아서서 cream and sugar를 넣어서 커피를 만들어줬습니다. ㅎㅎㅎ

세월이 많이 흐르고 저도 많이 변한 것 같은데, 실제로 제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종종 그대로인 것 같습니다. Truman Show에서 같은 자동차와 사람들이 그의 주변을 쳇바퀴 돌듯 맴돌며 반복적으로 나타났던 것처럼 말이지요.

무언가 다르게 살고 싶다는 소망은 마음 깊은 곳에 언제나 숨쉬고 있지만, 익숙한 일이 반복되는 삶 또한 그리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마셔보는 cream and sugar coffee가 달콤하고 따뜻해서 기분까지 좋아집니다. ^^

이 사람들의 나를 향한 열망

지난 월요일에 캐나다 하원(house) 총선이 있었습니다. 사전투표 비율이 높기 때문에 지난 월요일까지 총선이 열렸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네요. 4년 임기인 캐나다 하원은 338석이고 Conservative Party of Canada (보수당), Liberal Party of Canada (자유당), New Demographic Party (신민주당), Bloc Québécois (퀘벡당), Green Party (녹색당)가 5대 정당입니다. 이 중에서 첫 3개의 정당이 정치적으로 우파-중도-좌파의 스펙트럼을 보이고, Bloc Québécois는 퀘벡주의 지역 이익과 가치를 대변하는 정당이며, Green Party는 환경문제에 무게를 두는 정당입니다.

선거 결과를 2011년 -> 2015년 -> 2019년의 의석수 변화로 표기해 보면 이렇습니다.

Conservative: 166 -> 99 -> 121
Liberal: 34 -> 184 -> 157
NDP: 103 -> 44 -> 24
Québécois: 4 -> 10 -> 32
Green: 1 -> 1 -> 3

그러니까 이번 선거 결과를 크게 정리해 보자면,

1. 집권당인 Liberal이 지난 번 선거에서의 드라마틱한 승리에서 한 발 물러서서, 여전히 집권당의 위치를 지켰지만 과반수의 의석 확보에 실패했습니다. 의석 숫자가 줄어든 것에 대해서 당수이자 총리인 Justin Trudeau의 개인적인 스캔들 몇 가지와 더불어 지난 몇해 동안의 경기침체가 원인으로 꼽힙니다. 그러나 Conservative가 미래지향적인 정책 제시나 이슈를 선점하지 못한 이유로, Liberal의 패배 폭이 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2. NDP는 8년전 선거에서, 그러니까 4년전 선거 직전까지만 해도 캐나다의 제2정당이었습니다. 4년전 선거에서 의석수가 절반도 안되게 줄어드는 충격적 참패를 겪었는데, 이번에는 거기에서 다시 절반 수준으로 의석이 줄었습니다. 이제 제3당의 지위까지 잃었습니다. 제가 위에 좌파라고 적은 분류는 상대적인 것이고, 이 정당은 공식적으로 사민주의(Social Democracy)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좌파까지는 아니고, 한국으로 치면 정의당 정도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정당이 어떻게 8년만에 이렇게까지 몰락했는지가 요즘 언론에 많이 등장하는 분석 기사들입니다. 무역 분쟁과 세계 경기 침체 등의 혼란이 나라 전체적인 우경화를 야기했고, 지난 번 선거에서 Liberal과의 차별화에 실패한 후 모멘텀을 마련하지 못한 부분이 커 보입니다.

3. 국가 전체가 아닌 하나의 주(Province)를 대변하는, 아니 그나마도 그 주 전체가 아니라 그주의 배타주의를 대변하는 지역 정당이, 선거 두 번만에 4석에서 32석으로 의석수가 증가해서 원내 제3정당이 된 것이 크게 주목되는 일입니다. 무엇이 이들에게 이렇게 큰 승리를 가져왔을까요. 무엇보다 사람들의 마음 속에 내재되어 있던 분노들을 다른 모습으로 frame해서 이슈화하는 일에 성공적이었습니다. Bloc Québécois나 Coalition Avenir Québec같은 폐쇄주의 극우정당들은 경기침체를 극복한다는 명목으로 불어를 못하는 이민자를 받지 않을 뿐 아니라 영주권자들에게도 정기적으로 불어시험을 보게 하겠다는 공약은 퀘벡의 배타적 지역주의자들의 환심을 사기에 충분했습니다. 또한, 공무원들과 교사들이 공공장소에서 종교적인 색채를 드러내는 의상이나 장신구를 착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 역시, 이 곳에서 늘어나고 있는 중동 이슬람권 이민자들을 향한 적대감을 법으로 표현하는 선거 전략이었습니다.

제 개인적인 소회를 더하자면 1번은 이 시점에 적절한 결과인 것 같고, 2번은 NDP가 보여준 모습에 부합하는 결과이지만 나라 전체로 보면 안타까운 방향의 변화이며, 3번은 절망과 분노를 넘어 수치심까지 불러 일으키는 결과입니다.

Bloc Québécois의 구호이자 슬로건은 “On veut un pays!”인데 해석하면 “We want a country” 또는 “우리는 (독립)국가를 원한다”입니다. 퀘벡은 캐나다의 일부로서가 아니라 독립국가로 존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래 정당이란 이익집단으로서 특정그룹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소명이겠으나, 그 그룹이 사회적 계급이 아니라 하나의 지역과 그 지역의 다수 사람들이 갖고 있는 배타적 지역주의라면, 그 지역에 살고 있으나 그 지역주의 배타성의 대상이 되는 저 같은 사람들은 소외감을 넘어 공포와 무력감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온 지역이 이렇게까지 열망하는데 이쯤 되면 제가 이 곳을 떠나 주는 것이 지역사회의 평화에 이바지하는 길이 아닐까 싶습니다. ㅎㅎ

불가항력

보통 점심밥이나 커피를 사러 나갈 때, 저는 13층에 있는 제 오피스로 돌아오는 길에 계단을 이용합니다. 아침에 출근할 때도 해 봤지만 아침에 땀 흘리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아서 오후 시간의 루틴으로 정했습니다.

오늘은 아침 8시반부터 오후 2시반까지 여섯 시간 연속 수업이 있는 날이라서 전날 저녁도 덜 먹고 수업 이동 중에 먹을 에너지바도 챙겨서 출근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아뿔싸, 아침에 학교 건물 엘레베이터가 고장입니다. 수업하는 날이라서 옷도 신발도 불편하게 – 콤비 재킷에 딱딱한 구두 – 입었고, 하루종일 서 있어서 발도 다리도 아픈 날일텐데 이거 참 곤란하게 되었습니다. 할수 없이 한 손에 재킷과 코트를 들고 다른 손에 커피를 들도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동쪽 비상구 계단을 이용했더니 전면 유리로 되어 있는 벽 너머로 아침해가 보입니다. 해도 조금씩 오르고 저도 조금씩 오르니 층층마다 조금씩 더 세상이 밝아집니다. (그리고 더 더워집니다. @.@)

오피스에 와서 의자에 털썩 앉고 보니 외투를 걸쳤던 왼쪽 팔이 땀으로 젖었고, 아침에 드라이하고 나온 앞머리가 이마에 젖어서 붙어 있고,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제가 곧 퇴근을 앞둔 듯한 모양새입니다. 책상 위에 방금 올려 놓은 뜨거운 커피에는 손이 가지 않습니다. 그래도 덕분에 오랜만에 아침 풍경을 충분히 감상했고 억지로 운동도 했고 물도 많이 마셨습니다. 아침운동이 주는 특유의 상쾌함도 남습니다.

이렇게 불가항력으로 강제되어 하는 일들이 꼭 나쁘지만은 않은데도 이런 일을 마주할 때마다 장점들을 떠올리기보다는 실망과 걱정만 앞세워 왔네요. 그럼 다음에 엘레베이터가 고장나면 제가 좀 더 신나게 계단을 오를 수 있을까요? 그건 아닐 겁니다. 다음에도 저는 실망과 걱정에 압도되겠죠. 그래도 이렇게 엘레베이터가 반복적으로 고장나서 계단을 오르다 보면, 계단을 걷는 것의 유익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계단의 유익을 떠올리면서도 13층에서의 안도감보다는 1층 계단 앞에서 여전히 압도당하는 삶의 반복에 제가 아주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는 것 같기는 합니다. 그래서 여전히 이 상황에 실망하지만, 그렇게 실망하는 제 모습에 실망하는 일은 차츰 줄어들어서, 그 상황에 대한 실망이 더 큰 맥락에서의 좌절이나 포기로 이어지지는 않게 되는 것 같습니다.

13층 제 방에서 보이는 몬트리올의 가을 풍경입니다.

Oct 16 2019

Canadians are nicer?!

시카고로스앤젤레스에 다녀온 후 적은 지난 글 두 편을 보면, 제가 마치 캐나다 사람들보다 미국 사람들이 더 좋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아닙니다. 실제로 미국 사람들이 캐나다 사람들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이미지는 “nice하다”는 것입니다. 미국 사람들이 더 적극적으로 인사하고 친절을 베풀지만, 캐나다 사람들이 더 예의가 바르고 모르는 사람을 조심스럽게 대하며 화를 덜 내고 함부로 다른 사람의 일에 끼어들지 않습니다.

만약 카페에서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될만큼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이 있다면 캐나다 사람보다는 미국 사람일 가능성이 높고, 그런 사람에게 다가가서 조용히 하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역시 캐나다 사람이기보다는 미국 사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 묻지 않은 질문에 열심히 가르치려 드는 사람과 그런 꼰대질에 발끈하는 사람 역시 캐나다 사람보다는 미국 사람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의 간섭을 받기 싫어하면서도 남의 일에 참견은 잘하는 사람들이 미국 사람들 중에 특히 많은 것 같습니다.) 일반화하자면, 캐나다 사람보다 미국 사람들이 매사에 더 적극적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고 피로감을 주기도 합니다.

물론 캐나다 사람들에 대한 지금까지의 제 모든 의견은 퀘벡을 제외한 지역 사람들에 한정합니다. 퀘벡은 다른 모든 캐나다 지역과 아주 많이 다른 곳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