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와 이미지

제가 코스타 간사를 하는 동안 가졌던 개인적인 – 그러니까 신학이나 사역에 대한 고민과는 별개로 – 어려움 한 가지는, 비판과 지적을 많이 하는 제 실체와 이미지였습니다. 실체와 이미지라고 표현한 이유는 그 둘 사이에 교집합과 차이점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비판을 많이 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니 그 중에는 치기 어리다 싶을 만한 반항도 있었고 어쩌면 더 세게 싸웠어야 했을 부분도 있었습니다. 어쨌든 저는 내부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일이 잦았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제가 겪었던 어려움은, 다른 사람들이 저를 “비판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 프레임에 가두어 놓고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로 인한 오해로 답답하기도 또 주눅이 들기도 했습니다.

두 가지 예를 떠올려 보겠습니다. 한 회의에서 제가 발표를 마치자 어떤 분이 저에게 “왜 그렇게 비판적으로만 이야기하느냐”라고 하셨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비판적으로 들렸냐는 제 질문에, 그분은 저에게 뭐라고 딱히 지적할 수 있는 부분은 없지만 전체적인 “뉘앙스”가 비판적이었다고 하셨습니다. 그 이후로 다시 제 슬라이드를 펼쳐 보았으나, 저는 제 발표에서 비판적인 내용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코스타와 오래 함께 일해 온 어느 단체의 간사 한 분이 저에게 이메일을 보내셨습니다. 그 단체의 어느 간사와 코스타의 어느 간사 사이에 갈등이 있었는데, 그 문제로 제 기분이 상했다면 사과하고 싶다는 메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갈등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그 때는 제가 이미 코스타 간사를 사임하고도 시간이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그 메일을 보내신 분이 잘못된 상상을 하셨는지 아니면 잘못된 상상을 한 누군가로부터 보고를 받으셨는지는 제가 알 수 없으나, 정보가 만들어지고 전달되는 어느 한 시점에서 그 갈등으로 인해 화가 나 있는 제 모습이 각색되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했던 가수의 죽음과 그 아내의 석연치 않은 행동들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그녀에게 제기되는 의혹에 대해서 그녀가 “그런 짓을 하고도 남을 사람”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일지 모르지만, “그런 짓을 하고도 남을 사람”과 “그런 짓을 한 사람”의 차이는 뚜렷하게 구분되어야 합니다.

저는 그 발표에서 비판적인 내용을 쏟아낼 만한 사람이었고, 협력 단체와의 갈등 속에서 일선에 나와서 논쟁을 벌일 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바로 이런 이유로 저는 당시에 그 오해들에 대응할 자신감을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 나는 이런 오해들을 받을만 하지” 라는 자책 때문이었습니다. 어쩌면 그 가수의 아내도 저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녀가 실제로 얼마나 나쁜 행동들을 어디까지 했는지 알 수는 없으나, 실제로 한 일이 아닌 했을 법한 일들을 근거로 그녀를 비난하는 일은 옳지 않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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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벼르고 배우고

만나는 사람마다 갈등을 빚게 되는 날이 있지요. 컨퍼런스에서를 제외하면 하루에 여러 사람을 만나는 경우가 드문 저로서는 그런 날이 거의 없는데요, 어제가 그런 날이었습니다. 서로간에 짜증 섞인 세 번의 대화/미팅을 하고 나서 – 세 명 모두 같은 직장 내의 교수였고 세 번의 대화 모두 서로 다른 주제였습니다 – 제 오피스에 돌아와 앉으니 퇴근할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오늘 하루 밀린 일들을 하나도 덜어내지 못하고 감정과 체력만 소모했다는 생각에 더 허탈하고 화도 나고 그랬습니다.

뭐가 문제였을까, 오늘 나는 어떤 배움을 얻어내야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가, 그 세 사람이 자신의 가족이나 주변 사람에게 저로 인한 짜증을 쏟아낼 내용을, 그러니까 소위 제 뒷담화를 상상해서 글로 써 봤습니다.

(그 내용은 당연히 이 블로그에서는 생략입니다. ^^)

그런데 제 기대와 달리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서 그 사람이 A라는 가치관을 가지고 a라는 말과 행동을 했는데, 그것이 B라는 틀에 근거해서 b라는 행동을 한 나와 갈등을 빚었다는 잠정적 결론에 이르렀다고 해더라도, 저도 그의 A 가치관에 동의할 수 없었고, 그도 저에 대해서 “어떻게 B라고 생각할 수가 있나!”라며 흥분하는 모습만 떠올랐습니다.

제가 인간관계에서의 갈등 해결 능력이 부족하다는 건 자각하고 있습니다만, 제가 늘 해오던 대로 그저 피하기만 하는 것 외에, 뭔가 다른 훈련을 스스로 해야 하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어제는 더욱 간절했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 배움은 있었습니다. 어제 만난 그 세 사람이 모두 저보다 직장 상사 (i.e. 부교수 이상)이고, 어제 갈등을 빚은 이슈들 역시 힘으로 맞서면 저만 피해를 보게 되는 것들이었습니다. 그 덕분에, 제가 나중에 조교수와의 대화에서 그들과 다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구체적인 다짐들을 조금 더 정리해 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것들은 다짐이 구체적이지 않으면 (그러니까, 나는 나중에 잘해줘야지 따위의 다짐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경험과 관찰을 통해서 배워왔으니까요.

제가 좋아하는 밴드 가을방학의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어제 일은 흘려 보내렵니다.

똑똑한 아이길 바래 붙인 이름
똑똑하면 행복해지는 걸까, 지혜
인생의 절반은 참고 또 절반은 벼르고
왜 즐기질 못하니, 왜 놓지를 못하니

아이러니

오웬이가 학교 maternelle – 한국어로는 유치원 – 과정에 입학한지 일주일이 되었습니다. 오웬이가 다니는 학교는 불어만 사용하는 학교인데요, 영어나 한국어에 비해서 불어가 많이 부족한 오웬이에게는 지난 한 주가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수업은 대강 알아듣지만 다른 아이들과 소통이 잘 안되다보니 친구를 사귀기가 어렵고, 그래서 학교에 가기 싫다고 아침마다 하소연합니다. 앞으로도 몇 달 정도는 불편하고 힘들겠죠.

본인이야 힘들겠지만, 그래도 저는 오웬이가 이 시간을 잘 견뎌내기를 기다려주고 응원하는 것이 제 몫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 인생에서 정말 필요한 것 중의 하나가 역경을 버텨내는 – 이겨내는 게 아니라 버텨내는 – 힘인 것 같아서요. 아직 인생 여정의 출발선 부근에 있지만, 지금 이 시기도 오웬이가 그 힘을 길러내는 기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오웬이가 학교에서 선생님으로부터 칭찬 쪽지를 받아왔습니다. 반에서 자기 혼자만 받았다며, 조금은 상기되어 자랑하는 오웬이가 이야기하는 자초지종은 이렇습니다. 서로 떠들고 장난치고 있는 아이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선생님이 말씀하셨는데, 아이들이 계속 떠들고 장난을 쳤답니다. 그런데 오웬이는 친한 친구도 없고 불어도 잘 못해서 가만히 앉아 있었더니 선생님 말씀을 잘 들었다고 칭찬 쪽지를 받아 온 겁니다. 웃픈 일이죠.

인생이라는 게 이렇게 아이러니이기 때문이겠죠.
우리가 삶의 굴곡에 일희일비하기를 거부할 이유가 말입니다.

2017 0901 Tres Bien Owen

설교와 회중

저는 한국에 있는 청파교회의 설교를 인터넷으로 종종 듣습니다. 한동안 설교로만 접하던 그 교회를 처음 방문했던 것이 2012년이었는데요, 그 때 빗나간 제 예상 한 가지는, 그 교회 교인들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김기석 목사님의 설교는 철학과 고전에 많이 잇닿아 있는데, 그 부분이 설교의 예화에 가볍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설교 전체의 흐름에 구심점 역할을 합니다. 게다가 설교자가 이러한 고전을 인용하고 성서를 해석하는 맥락이, 우리 삶의 구제척인 모습보다는 역사와 사회의 전체적인 거시 위계에 머무릅니다. (바로 이 부분이 제가 이 교회 회중의 성격을 추측해내지 못한 이유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이런 설교에 근거해서 제가 유추해 보았던 이 교회 회중의 모습은 이러했습니다. 본인이 먹고 사는 데에는 지장이 없을 만큼의 기본적인 경제력이 있으나 그 이상의 물질적 부에는 큰 욕심이 없을 만큼의 양식을 갖추고 있으며, 높은 학력과 지적 호기심, 40-50대 나이, 그리고 더 좋은 세상을 향한 갈증이 머리와 가슴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으로 상상되었습니다. 교인들 중에는 민주당 지지자와 진보정치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2:1 정도의 비율일 것 같았습니다. 제 이런 예상들 중에서 다른 부분은 제가 확인할 수 없었으나, 적어도 외모(와 그에 대한 저의 선입견/편견)에서 느껴지는 첫번째 부분 – 경제력과 학력 – 은 의외였습니다. 많은 수의 교인들이 시장 상인들과 노인들이었고, 설교 중의 인문학적 내용보다는 잠깐씩 언급되는 우리 삶의 이야기에 더 큰 공감의 탄성이 들렸는데, 그 소리에 묻어나는 갈증은 강한 울분보다는 약한 탄식이었습니다.

저는 그 교회에 방문한 이후로 이런 궁금함을 가졌습니다. 내가 그 설교에서 배우고 느끼는 것들과 그 교회 교인들이 마음에 담는 것들은 얼마나 닮고 다른 것일까. 니코스 카잔차키스나 에드워드 싸이드를 실제로 읽지 않는 교인들은 설교에 언급되는 그들의 글에서 어떤 것들을 느끼고 있을까. 설교자가 일차적으로는 나 같은 사람보다는 교인들의 삶을 마음에 담고 메세지를 준비할진대, 그는 어떤 마음으로 설교의 얼개를 짜는 것일까. 어쩌면 내가 설교자가 전달하려는 것과 다른 앵글에서만 그 설교들을 들어온 것은 아닐까 (그래도 괜찮은 걸까). 그 목사님의 설교와 설교 외의 목회활동은 어떤 면에서 얼마나 일관된 모습일까.

아직도 이 질문들에 대한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중에, 저는 비슷한 경험을 지난 주에 했습니다. 제가 토론토의 한 교회를 방문했는데, 저는 그동안 그 교회 목사님의 설교를 음성 화일로만 몇 편 접했습니다. 제가 들어보았던 그 분의 설교들에서는 우리 삶의 부족하고 나약한 모습과 그와 연결되어 하나님에 대한 의존성이 자주 언급되었습니다. (물론 이 분의 설교는 제가 많이 들어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교회는 우선 건물이 매우 깨끗했고 로비는 매우 밝고 넓직했습니다. 주차장의 자동차들과 사람들의 옷차림에서 느껴지는 모습은 서울 강남의 대형교회 같았습니다. 30-40대의 젊은 교인들이 많았고, 교인들의 엷은 미소는, LA 한인타운의 한인교회에서 종종 마주하는 삶의 피로가 녹아있는 교인들의 얼굴과 대조적이었습니다. 아기를 안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자모실에서, 사람들은 주로 행복해 보였지만 어느 누구도 모르는 사람에게 인사하거나 말을 걸지 않았습니다. 교인들은 특별히 친절하지도 무례해 보이지도, 그리고 서로를 필요로 해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청파교회에서 느꼈던 저의 궁금함들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제가 어떤 궁금함에 대해서 전혀 단초가 없을 때에는 이렇게 글로 옮기는 것도 망설여지게 됩니다. 뭐라고 써야 할지 모르니 말이지요. 그래도 다시 한번 답을 찾아 보고, 또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의 조언도 구해 보려고 제 궁금함을 정리해 봅니다.

황망함

부모님 연세에 비해서 늦게 태어난 저는, 친척 모임이나 부모님 친구분들 모임에 가면 또래 친구가 없었습니다. 국민학교에 다닐 때에 외가댁 모임에 가면 제 이종사촌과 외사촌들은 모두 대학생 또는 그 이상이었기 때문에, 그 시간이 참 지루했고 그래서 그 모임에 가기도 싫었더랬지요. 외할아버지/외할머니댁은 여의도의 어느 아파트였는데, 숫기 없는 어린 아이였던 저는 어른들께 인사만 드리고 그 집을 나와서 아파트 베란다에서 서너시간씩 혼자 있다가 식사때가 되어서야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다들 저에게 “올해 몇살이냐, 많이 컸네”등의 겉도는 인사말만 걸어서 오히려 제 무료함과 어색함을 더하기만 하던 그 시간에, 그래도 따뜻하게 제게 장난도 치고 놀아주기도 하고 진심어린 말도 걸어주던 사촌으로 형이 한 명, 누나가 한 명 있었습니다. 둘 다 저보다 일곱여덟살이 많았기에 저를 데리고 놀아주는 데에 한계가 있었지만, 그래도 하루 종일 우두커니 있던 저에게는 그런 관심이 참 반갑고 고마워서 삼십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마음에 남습니다.

그 이종사촌 누나가 오늘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제 갓 오십인 젊은 나이이고 그 부모님도 살아 계셔서 그 안타까움과 충격이 더 크네요. 산다는 것의 의미나 하루와 순간의 소중함을 되새겨 보게도 되지만, 이내 걷잡을 수 없는 황망함에 다시 하얗게 지워집니다.